조금은 색바랜 주황색 유선전화 시내전화 료금은 3분에 40전국내 장거리전화 료금은 1분에 20전…상해 도심의 복주로에서아직도 공중전화박스를 운영하고 있는올해 78세 심옥수 어르신그는 27년간 이곳을 지키고 있다.
누가 아직도
공중전화를 사용한다고?
사람마다 휴대전화를 갖고 있는 이 시대공중전화박스를 찾는 손님은 많지 않지만이 곳을 찾는 사람마다서로 다른 사정을 안고 있다. 서너 시간을 기다려심옥수는 드디여 그날첫 손님을 맞이하였다.이 손님은 부동산 중개소에 전화를 걸어저렴한 가격의 주택 임대건을 문의하였다.허위광고나 스팸전화가 두려워그는 공중전화를 택했다. 어떤 사람은 가슴 아픈 사연을 안고 공중전화를 찾는다. 27년 동안 전화박스를 지키면서심옥수는 수많은 인생사를 듣게 된다. 전화에서 오고가는 몇마디를 통해그는 전화를 건 남성이상해에서 분투하는 청년이라는 사실을 눈치챈다.통화 내용에는 가출한지 여러해 되는 안해에게 집으로 돌아오라고 설득하는애절한 마음이 담겼다. 이 젊은 남성은, 생판 모르는 번호를 사용해야만안해가 전화를 받는다고 말했다.하지만 그 역시나 말 몇마디 오가지 못하고 전화는 끊겼다. 심옥수의 전화박스는또 사람들의 급한 일을 해결해주기도 했다.오랜 이웃인 리건명이 지난번 공중전화를 찾은 것은외출할 때 열쇠를 두고 나와급히 아들에게 전화를 하기 위해서였다. "아니면 밤새 밖에서 추위에 떨어야 했어요."
전화를 친구 삼아 외로움 이겨내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못했던 지난 세기 90년대공중전화박스는 한창 번성했다.그러다 보니 월수입이 많을 때는 5000원정도에 달하기도 했다.하지만 지금은 월수입이 겨우 몇십원에 불과하다.심옥수는 퇴직금이 있기 때문에이 일은 생계수단이 아니라고 말한다. 남편은 림종에전화박스를 계속 운영해 나갈 것을 심옥수에게 당부했다."수입이 없어도 괜찮아요.계속 열 수만 있다면저는 남편의 속내를 잘 알아요.제가 고독할가봐 걱정해서였어요." 남편이 세상 뜬지 20년이 넘도록심옥수는 독거생활에 적응하느라 무등 애를 썼다. 아침 9시가 되기도 전에 출근하고저녁 8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갔다.상해의 겨울은 매우 춥다.공중전화가 있는 경비실에는에어컨, 전자레인지, 온수가 있다.가장 중요한 것은언제라도 말동무가 되여줄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점이다. "저 혼자 집에 있는 것보다 훨씬 좋아요." 매일 저녁 집에 돌아오면심옥수는 자매들과50분 동안 전화통화를 한다. 그러다보니 그의 일상은전화를 떠날 수 없다. 정월 초하루는 그의 생일날 그의 소원은 아주 간단해 공중전화박스에는 상해 옛도시의 추억이 남아있기 때문에최근, 심옥수를 찾는 기자들이 많아졌다. 때론 신문학과 전공 학생들이그를 찾아 인터뷰 작업을 완성하군 하였다. 비록 인터뷰 내용이 거의 비슷했지만심옥수는 학생들과 있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했고그와 남편의 이야기를 한번 또 한번 반복해 들려주었다. "학생들은 저를 할머니라고 불렀어요.그들과 함께 있으면젊어지는 기분입니다.” 올해 정월 초하루는 심옥수의 생일이다.“저 운이 좋죠?전 세계가 저의 생일을 함께 축하해주니까요!"그는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하지만 함께 모일 수 있는 시간이 극히 적다. 올해는 그믐날밤 온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기로 약속했다.심옥수는 이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아들, 손자, 어린 증손…이들을 보지 못한지 꽤 오래 된다."새해에 우리 가족 모두 복 많이 받고 건강하고, 사업이 순조롭길 바랄 뿐입니다.” 로인이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은남편과의 언약을 지키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만년의 고독을 이겨내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로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오늘날심옥수 로인의 이야기 뒤에는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가족애를 넘어 동반과 소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