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약속 | '구원의 녀상'을 꿈꾸며 —불량주부의 '변'

时间:2020-10-03 来源:中国朝鲜语广播CNR

글 | 이송이 · 방송 | 구서림

    

    주부의 사전적 의미는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맡아 꾸려가는 안주인"으로 돼있으니 광의적으로는 일주일에 밥 일여덟끼니나 하나마나 하는 나 같은 '얼방디' 주부도 주부라 우겨볼 수는 있겠다. 하지만 내가 나를 안다. 주부라고 하기에는 함량미달인 것을. 모름지기 주부란 가족 내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모두 책임져 맡아 하는 사람이 아닐가 한다. 사전적 해석에는 ‘안주인’이라고 돼있는데 남자도 가정주부를 자처하는 경우가 최근에 많아지고 있다. 따라서 ‘안주인’의 해석도 다양해질 것 같다.  


    간헐적으로 길어서 일 년, 짧게는 며칠 정도 전직주부로 지낸 적이 있다. 육아 휴직을 신청하고 일 년 넘게 육아와 가정일을 돌보았던 시기는 내게 있어서 가장 힘든 시간이였다. 자기 전에는 이튿날 아침 먹을거리를 걱정해야 했고 저녁이 가까워오면 오늘 저녁엔 또 뭐 먹을지를 고민해야 했다. 아이에게 점심을 먹이고 잠깐 커피타임이라도 가질가 싶으면 아이가 어질러놓은 빨래가 눈에 띄였고 아이를 재우고 빨래를 해놓고나면 맘껏 어질러진 방을 거둬야 했다. 그러고나면 저녁때가 가까워졌다. 


    주부의 어려운 점은, 에너지소모가 큰 것도, 인간관계가 힘들어서도 아니였다. 일과 휴식의 경계 없음, 그것이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 힘들더라도 뚝딱 일을 마치고 한숨 돌릴 겨를이 없다는 것이 나를 자주 멘붕(멘탈붕괴)이 오게 만들었다. 


    끝날 듯 끝나지 않을 듯 끝이 보이지 않는 다음 끼니 걱정도 사람을 지치게 했다. 


    그때 처음으로 엄마의 고생을 떠올려봤다. 한때 우리 집은 막내 외삼촌까지 와있어서 여섯 식구가 살았다. 엄마 아버지가 출근하는 공장은 겨울이면 방학을 하군 했는데 두 오빠와 내가 다  겨울방학을 맞으면 여섯 식구가 대낮부터 다 집에 있을 때도 있었다. 


    그 여섯 식구의 밥을 하루 세끼 지으면서 엄마는 다 팽개치고 도망가고 싶지 않았을가? 그 여섯 식구의 빨래를 하수도도 여의치 않은 집에서 손으로 씻어내면서 당장 걷어차고 뛰쳐나가고 싶진 않았을가?


    물어본 적은 없지만 충분히 그런 순간들이 있었으리라… 그때는 휴식일이 일요일 하루밖에 없었다. 주중에는 출근을 하고 저녁 때 퇴근해서는 밥을 하고 설겆이를 하고 집을 거두었다. 때로는 식구들 겨울에 입을 옷을 뜨기도 했다. 하루 쉬는 일요일에는 식구들 빨래를 했다. 여름에는 강에 나가 빨래를 했지만 겨울에는 집에서 가마에 물을 끓여서 해야 했다. 공교롭게도 우리 집 상수도와 하수도는 겨울이면 얼어붙어 물이 나오지도 물을 버릴 수도 없었다.  나나 작은오빠가 뽐프로 물을 잣았고 아버지와 큰오빠가 빨래한 구정물을 내다 버렸다. 


    고된 공장일을 하면서도 엄마는 명실공한 '주부'였다. 


    료리나 집일에 아무 흥취도 열정도 없는 나를 보고, 결혼 전에 엄마가 꽤 걱정을 했다. 시집 보내고 아무래도 딸에게 살림도 못 가르친 죄로 욕 좀 먹을 것 같다고 자책하니 아버지가 그러셨다. 


    "놔두오. 그런 걸 그리 잘해서는 뭘 하겠소. 그런 걸 잘하면 그런 걸 잘하는 녀자밖에는 안되오." 결국 나는 '그런 것도 못하는 녀자'로 되고 말았다. 


    "난 집일에 취미 없슴다"라고 하자 엄마는 

    "집일을 취미로 하니?" 하고 일갈을 날리셨다. 

    "출근하느라면 시간이 없슴다. 바쁨다."라고 하자 

    "니가 큐리부인이라도 되니?"라고 하셨다. 


    녀자의 집안일을 하늘 쯤으로 아는 엄마가, 집안일을 안해도 괜찮다고 여기는 녀자는 큐리부인 정도는 돼줘야 했다.


    엄마가 아는 녀자 명인은 많지 않았으므로 아마 엄마의 기준으로 큐리부인 정도의 인류에게 혜택을 가져다준 과학자쯤은 되여야 집일을 안해도 되는 면죄부를 줄 수 있었나보다. 


    나는 그런 엄마와 녀성의 사회진출과 사상해방 나아가 량성평등에 대해 론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시끄럽다고 핀잔하실 게 뻔했으므로. 일하기 싫어하는 것들이 말이 많다고 엄마다운 일갈을 날렸을 것이다. 


    그러나 주방에서 멀어졌다고 가정일을 덜 돌본다고 나는 과연 얼만큼의 량성평등을 이뤘는지 모르겠다. 회사 일에는 육아와 가정 일때문에 백프로의 에너지를 쏟지 못하고 가정에 와서는 회사 일을 핑계로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 아니 다하지 않는다. 너무 쉽게 나를 용서하고 합리화시키며 이것을 녀성의 사회적 지위의 상승 쯤으로 생각하진 않나 하는 자책을 해본다. 


    모두가 권리를 주장하고 일괄적인 평등을 주장한다면 어떻게 될가? 가정이나 사회나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희생을 필요로 한다. 녀성의 사회 진출과 사회적 지위의 상승은 또 다른 녀자의 희생을 대가로 한다.(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의 도움)


    그 보이지 않는 희생을 우리 어머니 세대에는 주부가 떠안았던 것 같다. 바깥일, 집안일의 경계가 없이 모두 떠멨다. 그러나 그녀들은 불평이 없었다. 그리고 스스로가 희생을 한다고 생각지도 않았다. 


    저번 주 <달팽이 약속>에 나간 일송이라는 저자의 글에 보니 주부는 가장 고상한 직업이라고 적고 있었다. 그들 본인은 전혀 고상하다고 생각지 않았겠지만 그 주부들의 고상한 희생정신이 없었더라면 다른 일가족의 행복은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나에게도 주부의 꿈은 있다. 이 생에 덕을 쌓아 다음 생에 녀자로 태여난다면 생활절주가 빠르고 압력이 큰 북경 같은 대도시보다는 자그마한 마을에서 성실한 남자를 만나 결혼할 것이다. 애 세넷을 낳아 기르면서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거기에 맞는 살림살이를 꾸려나가며 그렇게 예쁘게 주부로서 살 것이다. 


    이게 내 성과예요, 이거 회사로부터 받은 상장이에요 할 만한 건 없지만, 이거 내가 잘해서 받은 보너스예요 하고 내놓을 돈봉투 같은 것도 없지만 보이지 않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기꺼이 떠맡아하며 그것을 천직으로 알고 형제끼리 화목한 아이들의 엄마로, 부드럽고 성실한 한 남자의 유력한 내조자로 그렇게 살고 싶다.  


    그 고상한 정신세계를 소유할 수 없어서 가정주부의 꿈은 이번생엔 이룰 수 없는 먼먼 리상이다.

   


监制:金光永

审稿:赵香兰

编辑:具瑞琳

制作:朴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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