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의 헌신과 한탄

时间:2020-08-27 来源:中国朝鲜语广播CNR


글 | 궁금이 · 방송 | 구서림

     출근하면서 집을 나섰다가도 다시 돌아가서 잊어버린 마스크를 들고 나온다. 조용한 이른 아침이라 문을 여는 소리에 옆집의 할아버지 내외가 깰가 걱정스러운데 두번씩이나 드나드는 것도 무척 미안한 일이다. 


     실외에서 마스크를 선택적으로 착용하라는 북경시 지침이 내려진후로 아빠트단지를 빠져나오면 마스크를 손에 들고 지하철역까지 간다. 그 사이 어떤 생각에 골몰하다보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로 검색대까지 갔다가 역무원이 마스크를 쓰라고 권고해서야 정신을 차리고 련신 미안하다면서 황급히 마스크를 착용한다.  


     지하철 안에서 마스크를 쓰기는 했는데 코를 내놓은 승객이 가끔 있다. 조사에 따르면 감염자를 마주했을 때 둘 다 마스크를 썼다면 감염 확률이 1.5%이나 둘 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대화를 했다면 확률은 90%라고 한다. 완장을 두른 관리원이 다가와서 마스크를 바로 착용하라고 권장한다.


     “북경시가 이미 방역 등급을 3급으로 하향 조절하지 않았었나?”


    아주 귀찮다는 듯이 반문한다. 관리원은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없이 한마디로 요약한다.


     “지하철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통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지하철에서 나와 사무실쪽으로 오는 길에 앞에서 가던 환경미화원이 갑자기 재채기를 한다. 그러자 그 뒤를 따르던 녀성이 급하게 피하며 인행도에서 내려 자전거길로 잰걸음을 한다. 나도 덩달아 그 뒤를 따라가게 됐다. 어쩐지 재채기를 하고 지나간 공기속에 뭔가 남아있을 것 같은 불안감이다. 재채기 한번도 굉장히 민감한 시대가 됐다.


    그럼 마스크를 쓰면 어떤 효과를 산생할가.


     우리가 흔히 쓰는 파란색 의료용 마스크는 세겹 구조로 되여 있다. 바깥층은 침방울을 막아주고 중간층은 세균을 차단하며 안쪽층은 착용한 사람의 침방울을 흡수해준다. 일본의 한 대학에서 이런 실험을 했다. 


     공기속에 7400개 립자가 떠 있는 실내에서 마스크를 얼굴에 밀착시키지 않고 적당히 썼을 때 마스크 안의 립자수는 1500에서 2500개로 줄었다. 그러나 마스크를 사방으로 얼굴에 밀착시켜 썼을 때는 마스크안의 립자가 최저 500여개까지 줄어들었다. 한편 마스크를 잘 썼더라도 말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면 얼굴 근육이 움직이면서 밀착효과가 떨어진다. 따라서 대중교통을 리용할 때는 전화를 하거나 대화를 삼가는 게 좋다. 


     최근 한국의 감염자수가 늘어난 것도 집회 원인과 갈라 놓을 수 없다. 사람들이 워낙 많이 모인데다가 밀집 상태에서 서로 대화도 하고 구호도 웨치니 위험부담은 늘 수 밖에 없다. 민주를 앞세운 무분별한 집회는 이런 시기에 특히 위험한 발상이다. 주한 외신클럽 회장을 지낸 영국 출신의 저자가 펴낸 책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이 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민주가 ‘민심’에 기반한다는 아주 강한 믿음이다. 한국에서는 어떤 쟁점에 대한 대중의 정서가 림계질량에 이르면 앞으로 뛰쳐나와 모든 의사 결정 과정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야수로 변모한다. 한국인들은 이 야수를 ‘민심’이라고 부른다.”


    웬만한 방역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비상 시국에 집회에 나가지 않는다. 방송에서도 두팔 간격의 생활속 거리두기를 그렇게 반복적으로 강조하더구만은 왜 그게 귀에 들어가지 않을가. 바로 이 민주라는 강한 믿음하에 선을 넘어서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과유불급이다.


     최근에 한국의 모 연예인이 방송에서 모택동주석에 대한 부적절한 표현을 해서 댓글이 폭주하던데 아무리 민주요 언론 자유라고 해도 다 선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아무 말이나 뱉어놓고는 웃자고 한 얘기지 다른 뜻이 없었다고 변명해서 될 일이 아니다. 결국은 방송사가 사과를 했지만 연예인들의 비적절한 발언으로 우리나라 네티즌들의 정서를 건드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바이러스 방역에만 마스크가 필요한 게 아니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 다는 말이 있는가 하면 세치 혀끝에서 사람 목숨이 오간다는 말도 있다. 말에도 려과 장치가 필요하다. 이런 장치가 바로 한 사람의 상식과 사유에 씌워진 보이지 않는 의식형태의 마스크다.


    의료용 마스크는 일회용이다. 한번 쓰고 버려지는 마스크가 이 시기에 인류를 위해 얼마나 큰 공헌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마당에 국외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해야 하나 선택적으로 해야 하나를 두고 아직도 시비가 끊기지 않는 나라들이 있다. 얇디얇은 삼겹의 마스크도 밖에서 오는 바이러스는 막아주고 안으로부터 나오는 바이러스를 흡수해주는 량호한 품성을 지녔는데 만물의 령장이라고 자부하는 인류가 이 문제에서 옴니암니 옳고그름을 따질 리유가 뭐가 있을가. 바람이 불면 날아갈 정도의 일회용 마스크가 무슨 겨울의 두터운 솜옷도 아니고 왜 그렇게 밀어내는 걸가. 하물며 그건 내 건강도 건강이겠지만 주변 사람들의 건강과도 관계되는 문제인데 말이다. 


     바이러스 방어와 확산방지, 세균까지 걸러주는 마스크는 수명이 겨우 네시간이다. 그 뒤에는 버려져야 한다. 오직 사람의 건강을 위해 이 세상에서 네시간의 사명만 마치면 “생”을 마감하는 마스크의 헌신을 생각해서라도 방역수칙을 지켜주자.


     남을 위하는 게 나를 돕는 거다.


궁금이

youshengxiangban@126.com


   *본문은 작가 개인의 견해일뿐 중국조선어방송넷 위챗 계정의 견해나 립장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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