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이렇게 좋은 당신이 있어서!

时间:2020-02-14 来源:中国朝鲜语广播CNR

“사내로 생겨서

이렇게 많이 눈물을 흘려보긴 처음이다.
매일마다 뉴스를 보면서
30년동안 참았던 눈물을 모두 쏟고 말았다.”
 
전염병사태가 들이닥친후
우리는 동포의 고난때문에
마음이 아프지 않은 날이 없었고
고락을 함께 하는 정 때문에
감동받지 않은 날이 없었다.
 
무한을 치유하고
중국을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당신
고맙습니다, 이렇게 좋은 당신이 있어서
 
NO.1
2월 2일,
22톤의 바나나를 실은 화물차가,
중윁 국경에 있는 운남성 하구현에서 출발하여,
목적지인 호북으로 향했다.


22톤의 바나나는 
93호 마을주민이 기부하였는데
그들중 47호는 등기된 특별빈곤호였다. 

호북의 여러지역에 
물자공급이 딸린다는 소식을 알게 된 
마을주민은 
자발적으로 기부에 나서
오토바이로 조금씩 산아래로 실어날랐다.

22톤의 바나나는 
마을 주민의 사랑을 담아 호북에 보내졌다.
 
NO.2
다른 한켠, 국가급 빈곤현인
하남 숭현 염장향 죽원구촌의
마을주민은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무한에 10만근의 파를 기부하였다.

 
대파수확기를 구하지 못한탓에
300여명 마을주민은 
맨손으로사흘 꼬박 파를 뽑아
트럭 가득 10만근의 파를 실었다.

  
NO.3
12년만에 은혜를 갚은 사연이 있다.
사천 문천현 삼강진 룡죽촌마을 주민은
밤낮으로 6대의 트럭을 운전하여 
무한을 향했다.
트럭에는 
신선한 야채 100톤이 실려져 있었는데
이는 마을사람들이 자발적으로기부한것이다.

 
“문천사람으로 고마움을 잊으면 안되지요!”
6대의 트럭에는 모두 같은 말이 붙여져 있었다
“문천은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무한 힘내라!”
 
NO.4
심양은 무한에 배추 130톤을 보냈고
내몽골은
유제품과 고기 600톤  호북에 기증하였으며
감숙농민은 
사과 10톤을 보냈고
운남은 
백톤에 달하는 특산품을 호북에 보냈으며
우룸치시는 
소독액 30톤을 무한에 기증하였다...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뉴스속에
이어지는 기부소식은 
어찌보면 눈에 띄지 않을수 있으나
이 모든것은 속마음을 털어 보낸것이다.
모든 물건에는 그들의 성의가 깃들어있다.
 
NO.5
채소를 기부하는 대오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그는 혼자서 1인팀을 구성하였다
북경 상해에서 온 의료대가
무한 금은담병원 근처에 
거주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진사부는 전동삼륜차로 30km를 운전하여
의료팀이 거주하고 있는 호텔에 
24박스의 신선한 야채를 보냈다.
 
 
자기집의 채소가 부족하자 
그는 고향사람을 찾아서 사려고 했다.
고향사람도 그가 의무일군들에게 
기부하려고 하는것을 알고 
돈을 받지 않았다.
네비게이션을 쓸줄 모르는탓에
진사부는 길을 물어가면서 운전해야 했다.
도착했을 때에 
낯과 손은 찬바람에 벌겋게 부었다.
진사부가 말하지 않은것은
그는 왼손에 공상으로 장애를 입었고
집안형편도 넉넉치 못했다....

 
NO.6
전염병 사태의 영향으로
방호마스크가 일약 희소물자로 떠올랐다.
안휘 륙안에서
한 젊은이는 마스크 500개를 내려놓고
민경에게 "수고가 많습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미처 쫓아가지 못한 뒤모습을 향해
민경은 거수경례로 회답하였다.

 

멀리 세계각지에 있는 중국인 
모두 방법을 찾고 있다.
그들은 려행계획을 포기히고
한곳 한곳 들려서 마스크를 찾았다.
짐이 무게를 초과해서 
추가비용을 지불하는 한이 있더라도
박스들이로 마스크를 국내에 메고들어와 
방제전투를 지원하였다.

 
NO.7
하남 상덕의 청년 학진은
한 마스크공장에서 일한적이있다.
나중에 회사는 사정이 안좋아지면서
그에게 월급대신 
2만원어치의 의료용 마스크를 주었다.
전염병이 긴급하다는것을 접한 그는
18000개의 마스크를 선뜻 기증하였다.

마을의 지도자가 
돈을 내고 구입하겠다고 했지만
그는 나라가 어려운 틈을 타서 
돈을 벌수 없다고 말했다.
“기부를 했으면 돈을 한푼도 받지 말아야지요.
누가줘도 다 안받겠습니다.”
 
NO.8
무한에서 음식점을 경영하는 구패문과 남편도
 “나라가 어려운틈을 타서 돈을 벌지 않고
자신의 힘을 기여”하겠다고 나섰다.
정월 초하루날부터 그들은 
도시락을 배달하느라 바삐 돌아쳤다.
“병원 의무일군들이 식사하고 싶으면
반시간전에 저에게 전화를 하기만 하면 됩니다.
24시간 대기하고 있어요.”
 

도시락의 정가는 15원으로 
리윤을 남기지 않았으며
한개의 도시락이라도 
차로 20km 운전하여 배달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가장 앞에서 분투하고 있는 사람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서운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음식점의 벽에는 
붉은 글씨로 이렇게 씌여져있다.
“사람은 무언가를 우러러야 한다,
높고 멀리 생명과 령혼을 받들어 세워야 한다.”
 
NO.9
텅빈 도시에서 
쏜살같이 달리는 뒤모습은 풍경을 이룬다.
그들은 사랑의 메신저이다.
그들과의 대화가 사람들로 하여금 
눈시울이 붉어지게 한다.
 
CCTV기자: 
지금 배달하는것이 무섭지 않나요? 
배달원:
당연히 무섭지요, 목숨을 걸어야 하잖아요.
CCTV기자: 
그럼 병원에 배달해라고 하면 갈건가요?
배달원: 
의사한테 배달하는거라면 가겠어요!

 
 
NO.10
전염병 발생기간에
라면은 의무일군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였으며
도시락도 매끼마다 먹기 힘든
“산해진미”로 변하고 말았다.
 
될수있는대로 자원을 절약하기 위하여
어떤 의무일군은 물을 조금씩만 마셔서
15시간이 되도록 
화장실을 한번밖에 가지 않았다.
마음이 아프다!
그들이 처음으로 끼니를 때우는 순간—
 

그들이 드러눕는 순간—

 
마스크를 벗은 그들의 모습--

 
NO.11
 “더 이상 집에 들어박혀 의무일군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지는 못하겠어요”
중국건설3국의 
@2차678(미니블로그 아이디)은
가장 빠른 시간에 화신산병원건설에 지원했다.
그녀의 카메라 렌즈속에
“건설괴물”은 서서히 위용을 드러냈다↓↓
 


설 년휴를 포기하고

아이를 속이고 건설현장에 나온 사람도 있다.

 
파이프를 내리고, 
케이블을 내리고, 전선을 내리고
이곳의 녀공은 일할때항상 앞장섰다.

  
더욱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은 분초를 다투어 과부하로 일했다.

  
철근콩크리트를 사용하지 않고
지어진 이 병원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건설자처점
인정도 의리도 있고 따뜻함도 있다.

 
“화신산”에서 임무를 마친 많은 건설자들은 
집에 돌아가는것이 아니라
뢰신산병원 건설현장으로 향했다......
현재 “화신산” “뢰신산”은
이미 사용에 교부되여 환자를 이송중에 있다.
 
NO.12
 ‘생명”이라는 이름의 빛을 잡기 위하여
2월10일까지 이미 154개 의료대
18700여명 의무일군이 호북에모여
현지 의무일군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전염병과의 투쟁에 나섰다.
 
북경병원, 북경협화병원
중일우호병원, 북경대1병원
북경대3병원, 북경대인민병원
북경의 6대 정상급 병원의 서기와 원장이 
직접 책임지고
820여명의 중증, 호흡기등 
전문의료진을 거느리고
중증병구역을 접수하여
“일인일안””제도에 따라 
의료구제방안을 제정했다.

  
북협화(북경 협화병원)
남상아(중남대학 상아병원)
동제로(산동대학 제로병원)
서화서(사천대학 화서병원)
입을 모아 말하는 “드림팀”의료대도
무한에서 합류했다.

NO.13
2003년“사스”와 맞서 싸운,
현재 84세인 종남산원사와
73세의 리란연원사도 방제일산에 나섰다.
 
종남산 원사는 
우리에게 무한에 가지 말라고 권했지만
정작에 자신은 의연히
무한행 렬차에 올랐다……
 
 
리란연 원사는 새벽 4시에 기차에서 내려
아침식사를 하고나서 바로 회의를 하고
위독한 환자를 수용한 병원에서 
헌신적으로 일했는데
하루의 수면시간은 3시간에 불과했다...
 

그들이 있으면 우리들은 안심한다.
검은 머리에서 백발이 되도록
그들이 있음으로 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리기심과 자기련민을 잊도록 하였다.
 
우리가 이 기사를 읽는 순간에도
“보수를 따지지 않고 생사를 불문하는”
의무일군은
전선에서 분투하고 있다... ...
 
그렇다,
“중국은 언제나 
가장 용감한 그들로부터 잘 보호돼 왔다.”
옛적부터 이야기하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니
현재를 보기로 하자
전염병 사태가 갓 터졌을 때에
한무리의 “래력이 범상치 않은 사람들”이 
빨간 손도장을 누르고
“전투에 부르면 있으면 반드시 응하고, 
반드시 전투에서 이기겠다!”고 적었다.

 
NO.14
“흰옷을 입고 정벌에 나선이여, 
부디 평안히 돌아오소”
한사람이 14억 인민의 마음을 치켜들었다.

사진출처@cinekino
 
NO.15
지금에 있어서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라는 것보다 
위로가 되는말은 없다.
의료진이 목숨을 걸고지킨 덕분에
많은 환자들이 속속 건강을 회복하여 
퇴원하고 가족과 만났다.
그렇다면 일선에서 감염된 의무일군들이
완쾌된 이후의 선택을 아는가?

그들은
동료들이 고군분투하는것을 
차마 보고 있을수 없어서
사망자 수자가 또 하나 늘어나는것을 
보고 있을수 없어서
하루빨리 팀에 복귀하고 싶어했다.
그녀는 자신의 병이 나아지기만 하면
다른 사람을 도와서 낫게 하겠다고 말했다.
 

NO.16
이 모든 풍파가 지나가고 
평화가 다시 찾아왔을 때에
어떤 사람은 우리가 직접 사의를 표할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사진으로만 그리워할수 밖에 없다.
 
그들은 전염병 전투일선에서 쓰러진 
민경과 보조경찰이다... ...

  
그들은 미처 벚꽃이 만발하고 
행인들로 북적이는 무한을 맞이하지 못했다... ...
 


백암송의 말처럼
전염병 사태에서 그들을 배웅할때는 쓸쓸했다. 
하지만 우리 내면의 기념은,
성대하고 오래갈것이다.
  
NO.17
마음의
절반은 감동을 저장하여 
따뜻함을 일깨우는데 씌이고
나머지 절반은 고난을 기억하여 
교훈을 섭취하는데 씌인다.
 


이런 결말은
우리가 나중에 
더 이상 우쭐할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때 이 뉴스를 보았을때느낌을 기억하라.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하여
오늘의 아픔을 달래는것 외에
우리는 다른 방법이 없다.

NO.18
이러한 기대는
우리의 아기가 너무 귀엽기때문에
우리가 분투하여 더욱건강한 사회를
그들의 손에 넘겨주는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무한을 응원하는 오리!
양주의 한 10세 녀자애는 집식구와 함께
묵직한 노랑오리 저금통을 파출소에 들고왔다.
오리의 몸속에는
녀자애가 모은 도합 495원의 용돈과 함께
“무한 힘내라”!라고 쓴 쪽지가 들어있었다.
 
 
수줍음 때문에 녀자애는 대청에 들어서지 않고
"노랑오리”를 전달실에 맏기고 곧 떠났다.
하지만 떠날 때 신난 몸짓이 
카메라에 기록되였다.

 
반딧불은 비록 미약하지만
도시의 곳곳에 반짝이면서 모여서 
별바다를 이루었다.
 
절강대학 의학원 부속제일병원경춘원구,
남자애는 봉투 하나를탁자위에 올려놓고
간호사에게 경례를 하고
“수고가 많으십니다”라는 말을 남긴채
쏜살같이 응급대청을 뛰쳐나갔다.
  

봉투에는 돈 1000원과 함께
남자애가 쓴 편지가 들어있었다:
“친애하는 의사, 간호사선생님
선생님들이 전염병과 싸우느라 
매일 고생하는것을 보고
저도 도움이 도고 싶습니다.
이 돈은 저의 자그마한 성의이니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NO.19
이때 우리의 “미래”도
뼈아픈 성장을 겪고 있다
그들은 이번에는
“우리가 세상을 보호할 차례”!라고 
말하고 있다.
 


NO.20
손발을 맞들고 고락을 같이 하자
혼자는 힘들지만 여럿이면 강하다.
 
그렇다 지금 뉴스를 볼때
눈물이 얼굴을 적시기도하고
좌절하기도 하지만
갑자기 커다란 희망이 생기기도 한다.
왜냐면 
이렇게 많은 훌륭한 당신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함께 고난과 싸우는 모든 분들에게 바친다.
고맙다,
한개 도시, 한개 나라를 지켜주어서!